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문단 편집) == 화재 진압 == 특히 많은 희생자가 난 사유들 중 가장 큰 원인은 사고 지역이 무선통신 난청 지역이라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신고가 늦었다는 점이다.]]''' [[1999년]] 당시는 [[휴대 전화|핸드폰]]이 보급되고 있는 시기긴 했지만 아직 보급 초창기여서 도시를 벗어나면 통화가 터지지 않는 음영 지역이 많았다. 즉 [[cdmaOne]] [[기지국]]이 충분히 깔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오산소방서]]에 신고가 접수된 건 '''사고 1시간 후였고''' 게다가 소방서에서 씨랜드까지의 거리는 '''70km'''나 돼서[* 당연히 직선거리가 아니라 도로사정 상 거리이다. 이 거리는 서울의 가장 동쪽에 있는 [[강동구]]에서부터 [[인천공항]]까지의 거리나 [[부산]]부터 [[경주시|경주]]까지의 거리다. 어째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냐면 당시 오산소방서에서 화성군까지 다 맡았기 때문이다. 원래 오산은 화성군의 중심지였고 당시 화성군청도 오산시에 있었으나 오산은 화성의 동편에 치우쳐 있었다. 사고 장소는 화성에서도 서쪽 끝인 데다 직선거리로도 30km 이상이었다. 가장 가까운 파견소(현재의 119지역대)는 9km 거리에 있었으나 정규 소방관이 단 1명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전부터 계속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는 보고를 올렸으나 상부에서 묵살되었고 결국 씨랜드 화재 참사로 이어졌다. 화성소방서는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08년에야 생겼다. 2020년대에도 인력 부족으로 고통받는 소방인데 1999년에는 오죽했을까.] 고속도로에서 가능한 한 빠르게 질주를 해도 40분은 잡고 가야 하는[* 사고 지점과 현재 [[화성소방서]] 본부가 위치한 [[향남읍]] 기준으로도 30분 정도가 걸린다. 그나마 지금은 고속도로가 깔려 있기 때문에 [[긴급자동차|제한속도를 무시하고 달리면]] 참사 당시보다는 훨씬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 긴 시간이 걸렸다. 또한 고속도로처럼 선형 좋은 도로도 40분인데 사고가 난 곳은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 '''비포장''' 산길에다 선형도 안 좋았으니 제 아무리 [[소방차]]가 신호 다 무시하고 달리고 새벽이라 교통량도 적었다고 한들 가는데 당연히 시간이 엄청 걸리는 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수련원 쪽으로 열려 있는 도로는 중형 승용차 1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도로 폭이 좁아서 아예 소방차가 들어가지도 못했고[* 사고 직후 소망유치원 원생 희생자 유가족들이 화재 현장을 돌아보기 위해 서울 송파구가 대절한 대형 버스를 타고 현장 입구로 향했는데 버스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길이 좁아서 유가족을 태운 버스가 현장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대형 버스가 진입하지 못했으니 버스보다 차폭이 더 넓고 육중한 소방차가 들어갈 리는 만무했다. 이 도로 상황을 본 유가족은 "수련원에 들어가는 정문(입구)부터 이렇게 허술한데 어떻게 당국의 허가를 받은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모습은 [[2021년]] [[12월 9일]]에 방영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자료 화면으로도 등장했다.] 다른 쪽 도로에는 수련원 측이 사유지라고 주장하며 쳐 놓은 [[http://cb119.chungbuk.go.kr/sub.do?menukey=262|철조망 및 쇠말뚝]] 등이 있었기 때문에 출동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화재 발생과 동시에 소방차가 출동했다고 쳐도 결국 화재 현장과 소방서의 거리가 멀어서 화재 발생 후 40분 이상 지나고 나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게다가 소방서 소속 차량이 노후 차량이었던 관계로 출력이 낮아 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70100329103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9-07-01&officeId=00032&pageNo=3&printNo=16788&publishType=00010|관련 기사]] 결국 동원된 소방 인력만 553명[* 소방관 249명에 공무원 200명 등등. 경찰도 50명 이상이 동원되었다.]에 소방차 등의 차량도 67대가 넘게 동원됐지만 3분 만에 물은 동이 나고 유독가스와 화염 그리고 건물 붕괴 위험 등으로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끝내 어린이 19명을 포함한 23명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